아스날 22/23 이른 시즌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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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5-15 13:13 조회 2,440회 댓글 8건본문
네, 진짜 끝났네요.
‘아직 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제발 하지 않길 바랬는데,
아르테타도 이젠 끝났다고 인정했네요. 외데고르도ㅜㅜ
인스타그램에 가끔 글을 끄적입니다. 아스날에 대해서도 가끔 씁니다.
시즌 초에 썼던 글이 생각나 오랜만에 읽어봤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희망을 주고 배신하는’
등이 눈에 띄네요. 그런 점에서 결과적으로 이번 시즌도 same old story 였습니다만,
그러면서도 그렇지 않았죠.
내가 응원하는 축구팀의 실패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게 되는 이유가 뭔지 종종 생각합니다.
사실 어쩌다 아스날을 골랐을 뿐인데, 스트레스 덜 받으려면 누구도 응원하지 않으면 되겠죠. 혹은 우승하는 팀을 골라 응원하면 됩니다.
저는 꼬맹이였던 94년부터 NBA 올랜도 매직을 응원해왔지만 스테판 커리의 골스왕조가 탄생했던 시즌부터는 골스팬이 되었습니다. 아스날의 추락을 받아주기도 벅찬데 20년째 리빌딩만 하는 팀, 도저히 응원 못하겠더군요. 그렇다고 올랜도라는 지역에 애착을 느낄 이유도 하나 없고… 그냥 맨날 이기는 팀 하나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연차가 좀 쌓이니 나름 중요한 경기는 챙겨보는 수준의 골스 팬이됐지만, 올해 르브론에게 패배하며 사실상 왕조의 마지막 시즌에 이르렀다고 딱히 슬프거나 마음이 쓰이진 않습니다. 아스날과는 다르죠.
예전 쓴 글에서 ‘팬’과 ‘서포터’의 차이를 ‘가치 투영의 유무’라고 나름 설명을 해봤는데,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서포터는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여하다보면 감정적으로 몰입도 하고, 축구팀의 실패가 내 실패가 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조롱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기도 하는 거죠.
물론 한발짝만 빠져나오면 그건 나의 실패가 아니고, 내가 스트레스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단 걸 알 수 있습니다. 법적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지금이라도 맨시티 팬이돼서 우승을 자축할 수 있습니다 (...) 내가 우승팀의 서포터라는 건 그 자체로는 사실 아무 의미도 없죠. 그 순간까지 내가 쌓아온 시간이 없다면 아주 잠깐의 대리만족일 뿐일 겁니다. 승리를 통한 대리만족만이 전부라면 세상 사람 모두가 맨시티와 레알마드리드를 응원하겠죠. 20년째 우승을 못하는 아스날은 그나마 이긴 경기라도 많지, 시즌 26패를 당하고 강등 당하는 팀을 응원하는 사람은 무슨 죄인가요.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
https://www.youtube.com/watch?v=n2QCiJC06y4
최근 NBA 야니스의 인터뷰가 화제가 됐었죠. 실패라는 게 결국 언젠가 있을(지도모르는) 성공을 향한 발걸음이라는 말이 문맥을 때놓고 들으면 클리셰 같지만 저에겐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 말을 한 사람이 코트 위에서 보여준 승리에 대한 집념을 분명히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팀 스포츠는 팀 메이트들의 지원, 부상, 날씨 그외 수많은 변수가 따라주지 않으면 개인이 아무리 탁월해도 결과적으론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그런 아이러니가 늘 존재하는 곳이죠.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개인에게 있어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걸 겁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이기진 못했지만 끝내 지지는 않는 사람’ 이고,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후련하게 받아들이고 앞을 바라볼 자격이 주어진다 생각합니다. 뻔한 비유지만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스포츠는 삶과 다르길 바라는 마음, 저도 있습니다만 이 모든게 '과정'이 될 날은 분명 올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올 시즌 대부분의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멋진 시즌을 보낸 것 같습니다. 물론 어제 경기로 그 좋은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됐지만… 잘 추스르고 팬들 위해서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라고요.
일취월장한 성적도 그렇지만 어쨌든 아르테타의 3년 플랜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한 시즌이었어요.
분명한 컨셉의 축구, 이전에 비해선 분명 성숙한 팀/개인 멘탈리티, 극장경기, 분명히 성장한 선수들 등.
(프리시즌 없이 중도부임한 시즌을 빼면 다음 시즌이 그 3년 대계의 완성입니다…ㅎㅎ)
속고 산게 십수년이지만 올 여름은 오랜만에 근거 있는 희망을 할 수 있겠네요. 그 어느때보다 기대되는 여름시장입니다.
저는 팬으로서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끔 생각합니다.
20년 ‘실패’의 역사에 참여하며 나는 뭘 배웠을까. 팬으로서의 최선 같은 게 있다면 그건 뭘까요.
2년전 한국에 들어온 이후 느끼는 건데, 시차 극복하고 새벽에 축구보는 한국 서포터들 정말 대단합니다.
여러분 모두 팬으로서 최선을 다하셨고, 올해도 기꺼이 속아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셔도 되지 않을까요ㅎㅎ
모두 팬으로서 한층 성장한 한해 되셨기를.
덕분에 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응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댓글목록
Ggorilla님의 댓글
Ggorill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쉬움은 묻어두고 개막 당시보다 기대치 200% 이상으로 재밌는 시즌이었습니다.
테타 감독과 선수들이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시즌을 운영했다는게 가장 맘에 듭니다.
좋은 팀이 되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 갖추어 진만큼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응원하느라 즐거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치달님의 댓글
치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즐거웠어요. 구단주부터 감독, 선수들, 직원들, 팬들 모두 좋은 꿈을 꾸고, 다음엔 현실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즌이었습니다.
장고님의 댓글
장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차근차근 올라가서 2등 했으면 엄청 즐거웠겠죠..
기대를 갖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되네요.
우승 내려놨다 생각했는데 어제 삼대영 되는 거 보고 잠이 안왔습니다..
이제 라이스나 빨리 영입해줬음 좋겠습니다..
no⑩Bergy님의 댓글
no⑩Bergy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정말 몇몇의 경기에서 불만족스러운적은 있지만 그 경기들마저도 좀 더 현상유지를 잘하는 맨시티가 있기 때문에 그런것이지 전체적으론 시즌에 만족합니다. 올해 특히나 우리 클럽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유지하려 했다는 점과 선수들의 멘탈리티나 발전이 고루 보였던 순간들이 많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앞으로 이 리그가 스타보이들의 향연이 시작될것 같다는 생각을했고 다음시즌부터는 홀란드를 막을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이 순위권을 가르는 기점이 될것 같아서 뭔가 좀 더 단단한 선수들을 이번 시장에 많이 데려왔으면 좋겠어요. 글에 좋은 위로를 받고갑니다. ^^
아스나르르님의 댓글
아스나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무엇보다 세스갱의 07/08 시즌과 외질과 슈퍼램지의 13/14 시즌 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스날 축구를 즐거움을 맛본 것 같아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ASAPROCKY님의 댓글의 댓글
ASAPROCKY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저도 0708 1314와 더불어 가장 재밌게 본 시즌이었습니다..
다랑쉬님의 댓글
다랑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 있는 시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르테타 부임 이후 좋은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한 시즌 동안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Vicente님의 댓글
Vicent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승한 팀(심지어 몇 경기 패배의 기억도 있는)을 제외하고 모두 실패했다고 가정한다면, 대체 스포츠의 존재 의의가 무엇일까요?
그런 의미로, 보배님의 글에서 잊고 있던 서포팅의 의미를 다시 찾아갑니다 :)
예전만큼 자주 찾아보지는 않고 출근 알람에 일어나 폰을 뒤집어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기분 좋은 하루를 책임지는 알림이 많아 행복한 시즌이었습니다.
same old story든 아니든, 이야기는 끝나지 않으니까요. 글 즐겁게 읽었습니다, 하이버리 여러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