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아스날에게 정말 올 오어 나씽이었습니다. 플랜 B도 없었고, 다른 선수로 교체할 여력도 없었으며, 따라서 실수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데클란 라이스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주장은 올여름 미켈 아르테타 감독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클럽 내부 사람들은 몇 달 동안 그가 아스날 감독의 비전에서 얼마나 중심적인 역할을 했는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반복했습니다.
아르테타 감독 부임 4년차에 팀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려는 아르테타의 계획의 실현은 라이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이적 타깃은 라이스의 이적과 연결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라이스는 아스날 이적계획의 중심이자 핵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스널이 웨스트햄의 주장 라이스에게 은근한 구애를 펼치면서 라이스에게 던진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었죠.
두 차례의 제안이 거절되고 11시간 만에 맨체스터 시티가 뛰어들면서 협상의 마지막 몇 주 동안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아스날은 결국 라이스를 영입했고 금요일 오후 5시(영국 시간)에 마침내 웨스트햄과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라이스는 1년 더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된 5년 계약에 합의했습니다.
1억 파운드(한화 약 1,309억 원)의 이적료에 500만 파운드의 잠재적 추가 보너스를 더한 금액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이었습니다. 아스날은 원래 최종 가격은 7,000만 파운드에서 8,000만 파운드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협상을 시작했지만 결국 2021년 여름 맨체스터 시티가 아스톤 빌라로부터 잭 그릴리시를 영입하면서 세운 영국 선수 프리미어 리그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게 되었습니다. 아스날에게는 6개월 전에 했다면 정말 이상적이었을 이적이었지만, 아스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스널은 라이스의 포지션에 그 어떤 선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재능을 영입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 라이스가 아스널의 믿음대로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면, 버질 반 다이크와 알리송의 영입이 위르겐 클롭의 재임 4년차에 리버풀의 성장세를 끌어올렸던 것처럼, 이번 계약에 투입된 추가 자금과 그 이상의 상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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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은 오랫동안 라이스를 중요한 퍼즐 조각으로 여겨왔지만 올해 1월부터 본격적인 영입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카요 사카와 애런 램즈데일에게 라이스의 성격과 리더십 자질에 대한 조언을 구한 아르테타 감독은 라이스를 웨스트햄의 런던 스타디움에서 서쪽으로 6마일 떨어진 이슬링턴에 데려오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습니다.
아르테타 감독은 라이스를 겨울 이적시장 최우선 영입 타깃으로 삼은 후 1월에 이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아스날은 가능한 거래를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재정적으로나 순위표에서나 웨스트햄의 낮은 위치로 인해 라이스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웨스트햄의 데이비드 설리번 회장은 강등권 싸움에서 클럽의 핵심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라이스가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팀을 안전뿐만 아니라 5월에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 줄은 몰랐을 겁니다. 라이스가 여전히 주요 타깃이었지만 1월 계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아스날은 브라이튼의 미드필더 모이세 카이세도에게도 관심을 돌렸습니다.
6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카이세도 영입 제안이 거절당하고 매물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은 아스널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겨울 이적시장 둘째 날, 아스널은 에콰도르 출신의 카이세도에게 7천만 파운드를 제시했고, 카이세도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브라이튼에게 이적을 승인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브라이튼은 확고한 입장을 고수했고, 아스날로의 이적은 여름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상호 이해 하에 카이세도에게 파격적인 새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아스날은 이번에는 다른 유형의 미드필더로 다시 방향을 틀었습니다. 라이스와 카이세도는 파워와 다재다능함으로 유명하지만, 첼시의 이탈리아 국가대표인 조르지뉴는 두뇌가 뛰어난 선수로 기동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아르테타 감독은 아스널이 우승 경쟁에서 속도를 유지하려면 미드필더진의 뎁스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2월에 31살이 되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단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1월 이적시장 이후 몇 주 동안 아스널은 주요 타깃인 라이스 영입을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아르테타 감독과 아스널의 스포츠 디렉터 에두 가스파르, 라이스가 직접 만나 라이스에게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라이스에게 영입의지가 아주 확고함을 보여줬습니다.
거의 모든 계약에서 이런 프레젠테이션을 하듯이 에두와 아르테타는 라이스에게 전반적인 프로젝트와 그 안에서 라이스의 역할을 설명하며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 라이스는 에두와 아르테타가 본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합니다. 그들은 라이스에게 공을 넘기면서 서곡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과연 아스날 이적에 제대로 탑승한 것일까요?
라이스의 에이전트들은 여러 빅 클럽과 미팅을 가졌지만 세부적인 부분과 개인 맞춤화에 있어서는 아스널과 같은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24세의 라이스는 아스널의 영입 시스템에 있는 평가기준 중 아주 많은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르테타 감독은 거의 책 한권 분량의 라이스에 대한 보고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테타 감독은 라이스에게 6번 포지션의 역할에 대해 설명할 때 이 영입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고, 이는 라이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아스날은 웨스트햄과 좋은 관계를 맺어왔다고 확신하며 여름 이적시장에 임했습니다. 지난 여름 웨스트햄은 다른 팀들에게 태핑 증거가 있을 경우 법적 서한을 보내 접근을 경고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이번 여름에는 라이스가 클럽 축구의 최고 수준에서 뛸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에두와 리차드 갈릭이 선수와 그의 가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개인적인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이스의 문제는 그의 아버지와 형이 상업적인 부분의 어드바이저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고 있지만, 이 문제는 항상 해결해야 할 큰 문제였습니다. 아스널은 누구의 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아르테타 감독 역시 프리시즌 투어를 위해 미국으로 향하기 전에 선수단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했습니다.
아스널은 웨스트햄이 2022-23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챔피언으로 귀국한 후 축하 행사를 즐기고 지난달 몰타 및 북마케도니아와의 유럽 챔피언십 예선 더블헤더를 마치고 라이스가 잉글랜드 캠프를 떠날 때까지 정중하게 기다렸습니다.
아스널이 6월 14일에 6,500만 파운드에 1,500만 파운드의 추가 보너스를 더한 오프닝 제안을 한 것은 라이스 영입을 위한 충분한 상황이 조성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제안은 거절되었지만 아스널은 런던 이웃인 웨스트햄과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이날 햄프셔에서 열린 프리미어 리그 연례 총회에서 아스널의 팀 루이스 회장과 웨스트햄의 카렌 브래디가 대화를 나눈 것이 논의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이적료료와 지불 구조에 대한 클럽 간 논의에 깊이 관여했으며, 다음 입찰을 추진할 때 아스널 구단주와의 중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스널 측에서는 에두와 갈릭이 선수 협상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프로세스를 주도했습니다. 아스널은 시간을 갖고 다음 제안 금액을 검토한 후 6일 후인 다음 주 화요일(6월 20일)에 클럽 기록인 7,500만 파운드에 1,500만 파운드를 더한 금액을 제시했습니다.
예상대로 이 역시 거절되었지만, 아스널이 웨스트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전체적인 수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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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의 재능은 수년 동안 팬들의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는 아스날 혼자서 영입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 여름 라이스에게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카세미루와 결국은 스페인에 잔류한 바르셀로나의 프렝키 데 용을 영입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죠. 올 여름에는 맨유가 라이스 영입을 위해 현금과 선수를 더할 수 있다는 보도에 무게가 실렸고, 스콧 맥토미니, 해리 맥과이어, 앤서니 엘랑가 등이 모예스 감독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선수로 거론되었습니다.
리버풀은 라이스를 만나는 것조차 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소식통은 당시 주드 벨링엄을 영입하려하고 있었고 벨링엄 측이 짜증을 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스 영입은 배제했다고 합니다. 라이스의 동료 잉글랜드 미드필더 벨링엄은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했습니다.
한편 바이에른 뮌헨의 토마스 투헬은 라이스의 팬이었으며 그를 독일로 데려오고 싶어했지만 아스날이 선두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획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아스날은 잠재적 후보들을 제치고 공개적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6월 25일 일요일, 그들은 피하려던 불확실성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트레블을 달성한 맨체스터 시티는 8천만 파운드에 1천만 파운드의 추가 보너스를 더한 금액을 제시하며 웨스트햄에 더 큰 보장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스트레스 없는 영입이란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4월과 5월에 아스널의 우승 경쟁을 잔인하게 끝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런던의 라이벌을 노려보려고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스날은 이 시점까지 라이스 계획이 너무 많이 진행되어 방향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첼시의 카이 하베르츠와 6,500만 파운드의 계약이 거의 완료되었고, 아르테타 감독의 미드필더 전술 개조는 라이스와 함께 뛰는 하베르츠를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베르츠는 그라니트 쟈카를 대신해 왼쪽 8번 포지션에 배치되었지만 바이엘 레버쿠젠과 첼시에서 대부분의 경기를 10번 또는 측면 공격수 역할로 뛰었습니다. 아르테타 감독은 라이스가 하베르츠와 마르틴 외데고르를 보완할 수 있는 운동 능력과 볼 소유 능력을 갖췄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과감하지만 실현 가능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카이세도는 백업 옵션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복잡한 문제가 있었죠. 아스날은 1월에 끈질긴 행보로 브라이튼과의 관계가 무너졌고, 첼시는 여름 이적시장을 앞두고 많은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사실상 카이세도는 첼시 선수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스날은 라이스 영입에 대한 웨스트햄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카이세도의 캠프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아스날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아스날은 자신들이 원하는 유형의 미드필더에서 카이세도와 라이스가 그들 만의 리그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대안은 7시즌 만에 챔피언스리그 축구에 복귀하는 데 필요한 엘리트 수준에서 크게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맨시티가 라이스 영입전에 공식적으로 뛰어들었을 때 아스날은 당황했습니다. 라이스는 한동안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이 자신이 원하는 행선지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떠나는 주장 일카이 귄도간을 대신해 과르디올라 감독 밑에서 뛰는 영국과 유럽 챔피언의 유혹에 고개를 돌릴 수 있었을까요?
맨시티의 제안은 라이스가 다른 옵션을 고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스날은 라이스가 본인이 한 약속을 재확인하길 바랬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스널은 웨스트햄의 몸값에 근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스널의 의사 결정 과정은 다른 클럽보다 관료적입니다. 스카우트 시스템부터 시작해 아르테타, 에두, 갈릭을 거쳐 대주주인 미국의 크랑키 가문까지 지휘계통을 거쳐야 공식적인 이적이 승인됩니다. 그 후 다시 지휘계통을 통해 아래로 전달되는 구조는 견제와 균형이 있는 모델로 설계되었지만, 외부에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적 시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는 너무 느린 프로세스라고 인식될 수 있습니다.
웨스트햄이 자신의 가치보다 현저히 낮고 지불 계획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 두 가지 제안을 모두 빠르게 거절했을 때 그들은 확실히 열기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의심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아스널은 여전히 선두주자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6월 27일, 아스널이 맨시티를 탈락시킬 만한 제안을 들고 다시 찾아왔을 때 그 자신감은 증명되었습니다. 1억 500만 파운드의 제안은 거래를 지불 조건 협상의 마지막 단계로 옮기기에 충분했습니다. 맨시티는 아스날과 경쟁하고 라이스를 유혹하려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결국 경쟁에서 발을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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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은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상당히 높은 금액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경험이 없는 어린 선수를 1억 파운드 이상에 영입하는 데 따른 위험 부담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팀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계산된 선택이며, 라이스 같은 퀄리티를 가진 선수가 아스날을 당연한 다음 단계라고 본 것은 쿠데타에 가까운 일입니다.
맨시티는 트레블을 달성한 최고의 팀이지만 라이스에게 아스널로의 이적이 합당한 이유는 많았습니다. 맨시티는 이미 완성된 팀으로 보이지만, 아스널 이적은 성공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승컵을 향한 여정의 시작입니다. 라이스는 유럽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젊은 선수단 중 하나이자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에 합류하여 도전자에서 챔피언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123년 웨스트햄 역사상 세 번째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주장으로 2022년 23세의 나이에 주장 완장을 차게 된 라이스는 책임감을 갈망하는 인물입니다. 지난 4월 본머스 원정에서 승리한 뒤 웨스트햄 동료들이 "10년만 더, 10년만 더 데클란 라이스..."라는 구호를 계속 외친 데에는 그가 또 한 번의 맨 오브 더 매치 활약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퇴장이 품위 있게 처리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적을 강제하는 이적 요청서를 절대 제출하지 않겠다고 구단에 약속했었습니다. 스태프들은 이번 시즌이 웨스트햄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라이스의 헌신에서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월 런던의 라이벌 토트넘 홋스퍼와의 원정 경기에서 패하며 웨스트햄이 15경기를 남겨두고 강등권으로 떨어진 후 두 차례의 선수 미팅을 통해 라이스는 리더십 스타일을 바꿨습니다. 라이스는 스스로 전면에 나서서 팀을 이끌었고 훈련장에서도 훨씬 더 큰 목소리를 냈습니다. 라이스는 지난 시즌 7위와 유로파리그 준결승에 올랐던 팀 스피릿을 되살리기 위해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하지 않을 경우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라이스는 웨스트햄이 챔피언십으로 강등되는 것이 자신의 이적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었을지라도 강등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라이스는 웨스트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남은 커리어를 웨스트햄에서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의 재능과 야망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높은 곳에서 떠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시즌 마지막 3개월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드리블과 전환 플레이로 웨스트햄이 경기를 더 잘 장악할 수 있게 했습니다. 결국 프라하에서 이탈리아 팀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라이트백 동료 블라디미르 쿠팔은 라이스의 리더십이 "우리 시즌을 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적료 지급 구조에 대한 추가 논의로 인해 이적 공식발표가 지연되었고, 웨스트햄은 라이스가 아스날에 합류한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적을 확정했으며 라이스는 팬들에게 작별 편지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스널은 라이스 영입을 확정했습니다.
아스날은 프리시즌 3연전 투어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이적을 발표함으로써 여름 내내 이어지던 이적설을 막았고, 라이스는 내일 새로운 팀 동료들과 함께 워싱턴 DC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입니다. (라이스 이적 발표 직후에 나온 기사라서 시점이 이렇습니다)
아스널이 라이스에게 이적 초기에 던진 질문은 그가 팀에 합류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아스널은 24세의 라이스가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004년 이후 클럽의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